퍼포먼스는 1950년대 초반60년대 까지 주요 흐름으로서의 두 물결을 가진다.

하나는  << judson dance group>> 이다.
이 그룹은 새로운 무용 개념을 가져온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일상적인 생활동작
-인간의 생리학적 구조에 바탕을 둔 자연스런 동작
이를 통해,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동작을 무용 안으로 포섭 한다.

발레와 비교해보면, 발레 는 소수의 특별한 사람만 행할 수 있는 동작을 선호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Judson dance group>>은 무용의 혁명을 가져온 거라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judson dance group>>는 뉴욕으로 이동하여,  무용계가 아닌 미술계에서 활동 하는 특징을 가진다. 왜냐하면, 뉴욕은 이미 사회적으로 해프닝이라는 미술의 영역을 개척하였기 때문이다. 이는 퍼포먼스와 같은 미술 영역이라 할 수 있겠다.

본래, 현대 무용계는 “시즌/비시즌” 으로 운용된다. 왜냐하면, 전문적이고 고난이도의 훈련을 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용을 위해서는 오랜 연습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의 무용은 ‘일상’과 ‘무용’을 통합하려는 움직임이기 때문에, 고도의 연습과정을 거부한다. 따라서, 해프닝을 개발한 미술계와 내용적인 면에서 있어서 훨씬 닮았다고 할 수 있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Y.Rainer <We shall Run> 1963


위의 작품을 보자. 먼저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공연자들 사이에 위계 질서가 없다.
2.모든 공연자의 동작이 거의 비슷하다.
3.일상적 복장을 입는다.(이 점은 비여성화와 맥락을 함께한다)

위의 특징은 발레의  복장과 행동을 유념해보면, 더욱 확실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C.Shneemann <meat joy>

훨씬 더 극단적인 영역으로 밀고나간 사례이다. 거의 누드 수준의 속옷 차림으로 무용수들은 벗고 나온다. 더욱이, 생선, 소시지, 물감 등을 몸에 뒤범벅 시키는데, 이 모든 사실은 “(일상까지 포함하는 모든 종류의) 금기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위 두 작품 사이에도 차이점은 분명 존재한다.
1. <we shall run>은 공연자와 관람자 사이의 구별이 뚜렷한데 반해서, <meat joy>는 그 구분조차도 없다. 공연자와 관람자 사이의 구분을 거부한다. 오히려, 가능한 한 많은 관람자를 공연자로 끌어들이려 한다.

2. 공연자의 단일한 동작은 없다. 옆 사람과 더불어 소시지 등의 사물을 가운데에 두고, 육체적인 행동을 묘사한다. 이는 신체 사이의 구분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의 발로이다. 이러한 점은 개별적인 동작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려는 특징을 가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Judson Dance Theater


Judson은 영국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었던 교회 judson에서 따온 말이다. Judson Dance Group은 이 곳에서 공연장, 연습실을 대여하며, 공연을 펼쳤다. 그들은 한 달에 한 번 워크샵을 열었는데, 그 때마다 많은 미술가들이 이 현장에 참여하였는데, 매번 새로운 예술 영역을 밝혀나갔다. 이 때, 퍼포먼스의 발전은 상당한 걸음을 내디딘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November 8th, 2007 20:20 November 8th, 2007 20:20
─ tag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테크노라티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테크노라티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테크노라티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테크노라티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이올린 태그검색올블로그 태그검색테크노라티 태그검색태그스토리 태그검색티스토리 태그검색
Trackback URL : http://kalos0.cafe24.com/tt/trackback/155
[로그인][오픈아이디란?]
open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