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의 경계선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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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벨(39),(http://www.joshuabell.com/(새 창으로 열기)) 그는 명실상부한 세계적 음악가이다. 그의 나이 14세 때 리카르도 무티,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다. 이후 그는 카네기 홀에서 데뷔 무대를 치렀고, 같은 해에는 애버리 피셔 커리어 그랜트 상을 수상하는 등 천재적인 능력을 인정받았다. 1998년에는 윈튼 마셜리스와 어린이를 위한 앨범 'Listen to the storyteller'가, 2002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작품에 기초한 '웨스트 사이드 모음곡집'이 그래미상(Best Engineered Album)을 수상하였고,  2003년에는 인디애나 주지사 예술상(Indiana Governor`s Award)를 받았다. 특히 그는 다른 클래식 연주자들과는 달리 대중과의 만남을 중요시하였다. 투나잇 쇼, 나이트 라 등 수많은 TV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출연하면서, 자신의 명성을 드높이는 동시에 클래식 음악의 대중화에 힘을 쏟았다. 더불어, 그는 VH1에서 뮤직 비디오를 방송한 첫번째 클래식 연주가이기도 했다. 뉴스위크지(誌)는 이런 그를 두고, “벨은 뛰어난 테크닉 신동에서 진정한 음악가로 성장했으며 그의 음악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을 모두를 감동시킨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지난 4월 워싱턴 포스트 기사(Pears before Breakfast) 이다.

"HE EMERGED FROM THE METRO AT THE L'ENFANT PLAZA STATION AND POSITIONED HIMSELF AGAINST A WALL BESIDE A TRASH BASKET."

"그는 지하철 역사 L'ENFANT PLAZA 에 돌연 나타났고, 쓰레기통 바로 옆에서 벽을 뒤로한 채 위치를 잡았다."

그가 조슈아 벨이다. 지난 4월, 그는 워싱턴 DC 지하철 역사에서 허름한 차림으로 변장을 한 채로 공연을 가졌다.
천재적인 실력을 바탕으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그가 워싱턴 DC 지하철에서 공연을 했다는 사실은 클래식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정식 클래식 공연이 아닌, 소소한 예술가의 밥벌이를 위한 공연을 그는 펼쳤다.



1070여명이 조슈아 벨의 공연을 지나쳤고, 그 중 돈을 건넨 이는 27명이었고, 돈의 합계는 32달러였다. 평소 150달러를 호가하는 그의 공연이 1070여명에게 32달러에 제공되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예술공간의 의미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빨간 카페트를 걸어 웅장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과 멋드러진 무대가 관객을 기다리고 있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와 화려한 의상의 숙녀는 조슈아 벨의 연주를 듣기 위해 하나 둘 자리에 고이 앉기 시작한다. 이 공연의 가격은 150달러.

한 편에서는, 시끄러운 지하철 소리나 난무하고 사람들의 구드 소리가 방해하는 지하철 역에서 같은 인물의 동일한 연주가 시작한다. 가격은 무료.

예술공간은 대중에게 아직은 만리장성과도 같이 높은 장벽인지도 모른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자본의 상징과 은폐를 지적한 바 있다. 문화자본은 지갑 속에 들어 있는 지폐보다 더 견고한 형태로 부를 표현하는 매체라고 그는 말한다. 예술공간 역시 대중과의 괴리감을 여전히 그만의 속성으로 간직한다. 미술관, 박물관, 음악회 등의 예술공간은 아직까지도 대중들이 쉽게 다가가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만의 리그에 대중들이 비집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예술은 고상하고 도도한 가치를 항상 그 안에 담지하기 때문에 이를 소비하는 주체 역시도 경제,사회, 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무를 것을 강요한다. 무언의 폭력이 대중들로 하여금 클래식이나 순수예술과의 경계선을 스스로 설정하도록 조장한다. 문화소비에 있어서 자기검열을 대중들은 일상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역을 바삐 걸어갔던 사람들이 무지해서 조슈아 벨의 공연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아니다. 예술공간의 권력이 일상화되어 있는 오늘날, 지하철 역사라는 공간성이 던져주는 의미는 순수 예술 소비와는 멀고 먼 거리를 둔다. 따라서, 그들에게 지하철에서의 조슈아 벨의 공연은 한낯 아마츄어의 바이올린 공연으로 밖에 비취지지 않았을 테다.
뒤샹이 소변기를 통해 예술개념의 장벽을 허물었다면, 조슈아 벨의 공연은 지하철 역사라는 대중공간을 통해 예술공간 폐쇄성의 지각변동을 예견하고 있다. 예술은 일상 안에서도 충분하게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는 영역이다. 미술관이나 박물관만이 예술작품이 걸려있는 특권을 부여받지는 못한다. 오늘날 예술은 그 경계를 허물어가면서 확장의 기로에 있기 때문이다. 조슈아 벨이 예술영역에 대한 금기를 깨는 첫 발걸음이기를 희망하는 필자의 바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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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6th, 2007 23:33 May 6th, 2007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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