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은 어렵다. 무용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나열해 보자. 끊임없이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 백조처럼 무대위를
날아다니는 무용수의 몸짓, 그리고. 물음표를 얼굴 위에 가득 품은 관람객의 무표정. "안다"고 명확하고 정확하게 일반관객들은 감히 단언하지 않는다. 한 편의 영화가 막을 내린 후, 상영관을 물밀듯이 빠져나오는 관람객들은 이런 저런 자신들만의 감상을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뱉어낸다. 평가와 해석의 수준이 높고 낮음을 떠나서 일단 느낌과 감정을 표현하는 이들이 무수하다는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영화는 '대중적'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무용을 관람하고 나오는 관객들은 복잡하고 어수선한 공연장을 빠져나가기에 바쁠 뿐, 무용에 대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엿듣기에는 힘들다. 무용은 아름답다 하지만 일반 관객에게는 아직 어려운 예술장르임에 틀림없다.
MODAFE, The 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현대무용과 아방가르드의 만남이 한국에서 이뤄진다. 급진적 현대무용의 장을 맛 볼 수 있다는 경험만으로도 설레임을 일으키는 그런 무대이다. 허나, 이는 어쩌면 그들만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현대무용에 아방가르드라니" 미분과 적분 혼합 형식의 난해한 수학문제를 접하는 느낌을 일반 관객들은 지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필자는 전형적인 '일반관객'이다. 무용은 발레 전공하는 몇 분을 친분으로 '알고' 있을 뿐, 심지어 그네들의 무대에서 화려한 춤사위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클럽과 나이트에서 '누구나' 즐기는 어깨 들썩거리며 스탭을 장단에 맞추는 투박한 춤과 인연이 깊다. 누구나 처럼.
그래서, '일반관객'으로서 필자가 모다페의 현장을 급습, 탐색했다.
2007모다페는 무용의 한계에 관해 실험을 거듭해온 결과, '생각하며, 살며, 기뻐하며 춤추는 욕망을 가리키는' 춤의 근원-움직임과 철학, 에 집중한다고 한다. Dance Vista-Body, Philosophy, Movement, Live(몸, 철학, 움직임, 행동)이 2007모다페의 주제였다.
조셉나주의 <태양의 먼지>
2007모다페의 개막작으로 선정된 <태양의 먼지>는 철학적 성찰로 가득한 무용이다.
영상 매체를 무용으로 승화하는 기제를 <태양의 먼지>는 설득력있게 제시한다. TV, 영화, 광고 등 현대인들은 영상이미지의 무한한 반복 안에 존재한다. 재생, 정지, 빨리감기는 리모콘'만'의 기제는 아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도 무의식 중에 재생 버튼을 누르고, 순간 정지 화면을 원하기도 한다. 무용은 이를 포착한다.
두 인물이 담을 뛰어넘는다. 정지, 담을 뛰어 넘는 순간 (연출자)는 '일시정지'버튼을 눌렀나 보다. 다시금 뒤로 재생하듯이 인물들은 원래의 자리로, 아까 행동의 거꾸로 동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또 다시 행동을 시작하지만, 아까 보다는 보다 전개된 행동에서 멈추고, 처음으로 돌아간다. 영상을 거꾸로 재생하면 인물들과 배경이 거꾸로 진행하며 보여지듯이, 무용 내 인물들이 하나의 사건을 거꾸로 혹은 앞으로 반복 재생하는 모습이다. 하나의 챕터만큼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던 움직임이 순간 멈추고, 다시금 거꾸로 돌아가고 (다시 처음 장면)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챕터만큼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멈추고 다시 역순으로 돌아가는 형태인다. 이를 연속적으로 반복하면서, 하나의 시퀀스를 이뤄 나간다. 하지만, 그 전체 이야기 구성 역시도 처음과 끝이 맞물린다.
화가 에셔가 처음과 끝을 무색하게 만드는 그림을 숱하게 그렸다. "철학을 무용으로 표현했다"는 우문이 수렴하는 지점이 바로 에셔가 탐구했던 소재 혹은 주제와 같은 맥락을 취한다. 존재의 문제가 그것이다.
BE 동사를 이다/있다의 뜻으로 해석하고는 한다. "이다"는 대상의 어떠한 상태를 지시하는 단어인 반면, "있다"는 대상의 현재의 존재성에 더욱 큰 관심을 둔다. 존재의 문제가 바로 "있다"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처음과 끝은 하나의 선형적인 이야기가 하나의 철로를 따라 진행하는 상태의 출발역과 종착역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사태, 상태는 처음과 끝이 "있음"을 깨우치는 상징 장치이다. 소설은 발단과 결말이 있고, 영화는 인트로와 아웃트로가 존재하며, 자동차는 해드라이트와 백라이트를 가지고, 건물은 입구와 출구가 있으며, 삶은 탄생과 죽음이 반드시 있다. 그것은 당위적인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그러한 "사실"의 영역이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문제는 해석과 연결할 수 있는 별개의 것이다. 즉, 2시간 동안 극장에서 영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고나서도, 관람자에게 남는 장면은 몇 개로 손꼽을 수 있다. 그것은 인과적이거나 시간적인 순서로 이뤄지지 않는다. 퍼즐의 블럭처럼 제각각의 존재 상태 그대로 현존한다.
홍상수 감독은 이를 영화 <오!수정>에서 일상 속 연인 관계를 통해 풀어낸다. 남자와 여자가 기억하는 추억은 서로 너무 다르다. 남자는 포크가 떨어졌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여자는 수저라고 생각한다. 미묘한 차이일 수 있지만, 얼마나 인간이 대상의 존재성에 "사실의 규범"을 적용하지 않고, 자기 본위 대로 읽고 듣는지를 여실하게 드러낸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의 관심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대상을 인지하고 이에 대해 지각하고 이를 관심있게 바라보다가 이를 기억하는 매커니즘, 각각의 단계를 허들을 넘듯이 살짝 뛰어넘기 위해서는, 그 만큼의 매력요소와 흥미거리를 대상은 내포해야 한다. 별 것 아니어서 우리는 그 대상의 존재성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고는 한다.
그것은 영상을 돌려보는 우리의 행동거지 안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재미었어 보이면 그저 리모콘으로 다른 채널을 돌려버리는 시청자, 0.1초의 흥미거리도 제공하지 못하면 빨리감기를 하는 UCC 유저, 발췌독으로 수박 겉핥기식 독서를 즐기는 독자. 사소한 것들의 존재성, 그것의 의미를 우리는 모른다. 스스로에게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있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한 "있을까"라는 물음은 다시금 "있다"로 돌아온다. 마치 에셔의 손을 그리는 손처럼, <태양의 먼지>의 반복되는 이미들 처럼. 과연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태양의 먼지'이다. 365일 빛을 발하는 태양의 주변부에는 "태양"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먼지들이 빽빽하다. 우리가 지구라는 작은 별에서 태양의 윤곽을 망원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유는 태양빛을 흡수하고 반사시키는 주변의 먼지(소립자)때문이다. 그것들이 "있지"못했다면, 태양은 스스로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을 것이다. 조셉나쥬(연출가)는 그래서 태양의 먼지에 의미를 부여했는지 모른다. 미물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남겨진 티겟 수 만큼이나, 궁금증만을 가득 품은 채 돌아오던 길. 그것은 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험이기도 했다.







rss